본문 바로가기

일기

(35)
Stage#16 Carrion - Terradillos Stage#16 Carrion - Terradillos 9.23 Boadilla에서는 저녁에 이어 새벽 출발전에도 아내와 facetime을 할 수 있었다.냉면사발 반만한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Cafe con Leche) 어둠을 나선다.마을을 빠져 나갈때 늘 머뭇거리게 된다. 앞사람들의 행적을 쫓을 때야 무슨 표식도 지도도 gps도 무용하지만, 새벽의 어둠속에서 홀로 되었을 때에는 '노란 화살표'가 전부이다.목동팀한테 들은 얘기로는 오늘 첫코스 17km 가는 동안 마을도 가게도 물도 없다고 한다.가혹한 여정은 아름다운 새벽노을로 시작된다. 새벽에 노을이 지면 날씨가 나쁘다던데... ▼척박한 가로수길은 커브하나없이 올곧게 잘난척 죽죽 뻗어서 지겨움을 더한데다 카페도 없어서 예상대로 굶어야 했는데 저분들이 또..
Stage#15 Boadilla - Carrion Stage#15 Boadilla - Carrion 9.22 수로를(Canal de Castilla) 따라 있는 제방의 포플러 가로수 사이로 새벽별의 Camino de Compostela를 걷는다.아이폰의 Gospel을 들으며 기도한다. 가족들을 생각한다. 이래서 혼자가 좋다. 이내 미명을 맞이한다. 수로제방을 가로 지르는 작은댐을 넘어가면 Fromista에 이른다.병원, 우체국이 있는 마을. 거리의 환한 가로등 곁에 Bar가 있다. 목동부부와 조우. 샘에서 물한모금 하고 떠나려는데 예슬, 준기가 도착. ▼까미노에서의 샘은 장식품이 아니다. 건조한 날씨탓에 쉽게 갈증이 오고, 배는 고파도 견딘다지만 탈수는 위험할 수도 있기때문에 늘 물을 보충해 두어야 한다. 매번 생수 사먹는 사치는 순례자답지 못하다. 메..
Stage#14 Hontanas - Boadilla Stage#14 Hontanas - Boadilla 9.21 새벽길을 혼자 나섰다.Hontanas에서의 유폐로부터 일찌감치 달아나고 싶었나보다. 산길을 오르고 내려야 했는데 가끔 어둠속에서 알 수 없는 짐승소리, 벌레소리 등등이 으시시했다.한참 동안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멀리 헤드렌튼이 보이자 어찌나 반갑던지.산을 넘는데 한시간이 넘어 걸린 것 같았다. 어둠 속이라 지형이 파악되지 않으니 좁 답답하다.혹시 잘못된 길로 들어선건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어둠속 산길이라 표지를 찾기도 쉽지가 않다.산을 내려와 도로를 만나는데 어둠속에서 노란 화살표를 보고 입이라도 맞춰주고 싶었다.어둠속에서 여자 순례자 한명이 거꾸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는 길에 지팡이를 잃어버렸다고 길을 더듬어간다.오후에 그 사람을 다시 보았..
Stage#13 Burgos - Hontanas Stage#13 Burgos - Hontanas 9.20 혹독한 하루.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나왔던(물론 전후맥락 거두절미하고 단어만 기억된다) 메세타 고원지대 31km를 가로질른다. 머리위엔 지글거리는 태양이 발바닥 아래에는 딱딱하게 말라붙은 대지가 허기진 순례자를 샌드위치 하고 하루종일 지져대는 하루. 멀건 가깝건 어느 하루 편하고 쉬운 길은 없다. ▼새벽에 알베르게를 나와 산타마리아 성당을 가로지르는 길에 외로운 순례자상과 잠시 마주했다. ▼YS JK가 동행이 되어 서로 의지하고 걷는다. 저멀리 여수부부가 지나간다. ▼도시를 빠져나가며 일출을 맞이한다. 기찻길이나 고속도로를 만나면 가족들 생각이 나서 걸음을 더 빨리하게 된다. ▼때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침묵모드로 진행하기도 한다. 고원지대에서..
Stage#12 Ages - Burgos Stage#12 Ages - Burgos 9.19 정처(定處)가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그 방향을 가리키며 쉬임없이 나타나는 손짓(노란 화살표)에 늘 감사하고 감동할 수 밖에 없다.삶은 쉴래야 쉴 수가 없는 것이다. 길도 그렇다. 길은 멈추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땀 흘리고 기뻐하고 노래하며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Ages는 너무 쓸쓸하였다. 날씨까지 음산하여 쇠락한 마을을 서둘러 떠나고 싶었다.다음 기착지 Burgos는 대도시이다. 당연히 보상이 뒤따를거다.Ages를 떠나 곧 언덕을 만난다. 안개 자욱한 산언덕을 넘다가 한국에서 온 두 친구 JK, YS를 만나 동행이 된다.JK는 6월에 ROTC전역, YS는 일본에서 광고회사 PD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왔다.둘 다 선하고 총명해 보이는 ..
Stage#11 Belorado - Ages Stage#18 Belorado - Ages 9.18 Ages라는 지명을 여기오기 직전까지 아그네스로 잘못 읽은 까닭은?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 보고싶은 것만 본다. 신의 아그네스를 구태어 까미노에서 찾을 필요가 뭐 있다고.Ages는 '아게스'가 아니라 '아헤스'로 읽는다.종일 흐린 날이다. 막막한 숲길을 걷는데 좀 우울하고 적적하지만 길을 가다보면 뜻하지 않은 일,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다.Canaria 제도에서 온 Andrea는 자전거로 달리다가 급정거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준다.스페인령 카나리아는 아름다운 섬이라고 담에 기회되면 꼭 들르라고 당부한다. ▼Walking Laundry라고 명명했다. 빨래가 마르지 않은 경우 저렇게 배낭에 매달고 걷는다. 그래서 옷핀이 필요하다. 해가 있으면 일찍 마르는데..
Stage#10 Sto. Domingo - Belorado Stage#10 Sto Domingo - Belorado 9.17 ▼또 다른 새벽길을 나선다.아직 해가 뜨기전 산토 도밍고의 마요르 골목은 서둘러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로 이미 러시아워다. 오늘도 짧은 일정이라 하지만 발목 무릎이 욱신거리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온 Vincent의 말대로 이 길은 강력한 치유의 힘이 있다하니 몸을 맡기고 걷는 수밖에 없다. ▼새벽의 어둠이 아주 천천히 걷히고 구름 낀 하늘을 본다. 오늘은 햇빛에 좀 덜 시달리겠다.아직 어스름 어둠 속에서 새로운 순례자와 인사를 나눈다.British Columbia 에서 온 Kate는 지금은 Mexico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Palms Springs에 살 때 Bettford Center에서 무얼 했었는지 물어..
Stage#9 Najera - Santo Domingo Stage#9 Najera - Santo Domingo 9.16 ▼어젯밤 늦게까지 폭죽놀이 하는 통에 잠을 설쳤다.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까미노에서 깊게 잠들지 못한적이 있었던가. 온종일 걷고 나면 무조건 숙면이다. 사방에서 코를 골아도 아랑곳 않고 모두들 깊게 잠든다. 두고 온 저쪽 세상에 대한 미련,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맛난 것 재밌는 놀이 실컷 맘대로 할 수 있는 까미노 너머 세상에서 폭죽의 화연에 실려온 욕망의 냄새가 잠시, 아주 잠시 잠들기 전 순례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게다. 나헤라 강변에 우뚝선 암벽에 반사되는 폭죽의 화려한 불빛보다 우리 청춘의 화염은 더 뜨겁고 짧았으니.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이 밤은 짧고 잠은 깊으면 된다. 새벽에 일찍 출발.길을 잘못들어 동네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