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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9 Najera - Santo Domingo

Stage#9 Najera - Santo Domingo

Stage#9 Najera - Santo Domingo 9.16


어젯밤 늦게까지 폭죽놀이 하는 통에 잠을 설쳤다. 아니다 그럴리가 없다. 까미노에서 깊게 잠들지 못한적이 있었던가. 온종일 걷고 나면 무조건 숙면이다. 사방에서 코를 골아도 아랑곳 않고 모두들 깊게 잠든다. 두고 온 저쪽 세상에 대한 미련,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맛난 것 재밌는 놀이 실컷 맘대로 할 수 있는 까미노 너머 세상에서 폭죽의 화연에 실려온 욕망의 냄새가 잠시, 아주 잠시 잠들기 전 순례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게다. 나헤라 강변에 우뚝선 암벽에 반사되는 폭죽의 화려한 불빛보다 우리 청춘의 화염은 더 뜨겁고 짧았으니. 아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이 밤은 짧고 잠은 깊으면 된다. 


새벽에 일찍 출발.

길을 잘못들어 동네 가운데를 돌아나와야 했다. 간밤에 떠들썩하던 축제의 광장은 버려진 늙은 창녀처럼 지쳐 잠들어 있었다. 무대를 치우는 트럭이 장례차처럼 보인다. 그런데... 골목을 막 돌아서니 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젊음의 새벽은 다만 떠오르는 태양이 두려울 뿐이다. Anna와 Irache는 오늘 밤 또 파티한다고 Join 하랜다. 

"Yesterday, when I was young..." 

(Roy Clark의 "Yesterday when I was young" 저작권문제로 링크를 달지 못하니 각자 구해서 들어보세요)

얼마나 많은 밤을 이유없이 까닭없이 목적없이 지새며 마시며 고함치고 싸우며 분노하고 슬퍼하며 지샜던가.

왜 그랬던가. 그 무모한 새벽의 젊음을 한커트 하고 걸음을 재촉.





마을 나와 오르막길에서 가속이 붙는다.

이래서 새벽이 좋다. 신선한 공기, 맑은 침묵, 묵언수행하는 수도사처럼 스스로 성스러운 느낌.

오리온과 북두칠성. 우북두 좌오리온을 거느리고 매일 서진하는 새벽길에서 뒤를 돌아보면 찬란한 비너스가 길을 배웅한다. 

오늘은 유성까지 새벽의 축제를 빛내준다. 뭔가 '그림'을 만들 수 있을거 같아서 쪼그리고 앉아 Leica 프레임을 들여다 보다 한커트를 건졌다. 실루엣 두사람은 영국에서 온 John 부부


John from England 부부와 Azofra의 Cafe에서 같이 아침.

한국인들 그룹도 이내 만난다. 여수부부와 같이 걸으며 사연을 듣는다.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내일 걱정 없는 젊음이 어디 있겠는가.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사하다. 속도를 붙여 무쟈게 빨리 오른다.


Ciruena, 은퇴를 위한 휴양도시 분위기. 근데 여기서 못볼걸 봤다.

Rioja Country Club. 담너머 골프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다시 길에 오른다. 그래 나는 결코 수행정진 하는 수도승은 되지 못한다. 세속이 그립고 사람이 좋다. 그 속에서 행복하고 아름답다. 

마을을 빠져 나온다. 철제 동상 한커트.

쉬운 길은 없다지만 나즈막한 오르막 내리막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어제 목동아줌마가 만들어준 '주먹밥' 덕분이란 생각.




Santo Domingo에 도착. 

거리도 멀지 않은 데다(22km) 새벽에 출발한 덕에 오늘은 오전수업만 한 기분.

입구에 들어서자 처음 만나는 알베르게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풍스런 건물을 사용한다. 1번 침대를 배정 받는다.

뜨거운 물 샤워. 감동이다. '샤워' 보다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찾지 못했다. 와인도 나쁘지는 않지만.

Jaime가 왔는데 이곳에선 침대를 못구해 다른 Albe로, 음료수 한캔을 권했다. Jaime가 선택한 알베르게는 새로 지은 무니시팔이라 시설이 깨끗하고 넓다. 마당에선 자원봉사자가 물집 잽힌 순례자들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덱스터는 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투덜거렸다. 

나갔다 들어와 보니 내침대 근처에 누군가가 배낭뒤에 태극기가 매달려 있다. 애국심, 자부심 다 좋은 마음이지만 Camino에선 국적도 인종도 생각치 말았으면 좋겠다. 침대에 잠시 누우려는데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목동아줌마가 뒷뜰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뜰의 한구석에선 일본 아저씨 우찌무라가 혼자 빵과 포도주를 먹는다. 영어불통으로 대화가 얼마가지 못했다.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인 부엌에서 차를 마셨다.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샤워하고 빨래. 그리곤 동네 한바퀴 돌며 적당한 카페를 찾아 Tapas(Ensalada)와 맥주로 늦은 점심을 하는게 일상이 되어간다. 단순하고 편안한 하루의 기승전결 속에서 순례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브라질의 축구팀 바스코다가마의 팬인 Eric(frpm Rio)과 Dexter(from Ottawa) 어슬렁 거리더니 wifi가 되는지 물어온다. 카페의 암호를 알려주자 주저없이 앉아서 인터넷질 열심히 한다. 브라질과 캐나다가 나란히 앉았다. 


Canada인 Peter와 Canada 맥주 이야기를 나누다.

모두들 얘기한다. Camino에는 모두 좋은 사람들 밖에 없다고.

"I may say, on the Camino you can meet only those two kinds of people. The ones are angels, the anthers are those who are waiting angels"

동네에 관광객들이 많다. 닭 두마리 전설이 있는 동네라고. 조그만 기념품을 샀다. 

Morgan Family와 재회. Dan은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보트 얘기를 꺼내면 밤이라도 샐 기세다. 시애틀에 보트가 있다고 한다. 나중에 가서 같이 배타고 멕시코 가자고 한다. 믿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걷는 것보다 쉽다고 한다. 과자가게에 들렀더니 Daisy가 말린다. 시아버지가 살이 자꾸 쪄서 건강에 안좋은데 페이스츄리를 너무 좋아하니 이 가게 알면 안된다는거다. 이 동네 가게들 금방 문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