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Stage#10 Sto. Domingo - Belorado

Stage#10 Sto. Domingo - Belorado

Stage#10 Sto Domingo - Belorado 9.17


▼또 다른 새벽길을 나선다.

아직 해가 뜨기전 산토 도밍고의 마요르 골목은 서둘러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로 이미 러시아워다. 

오늘도 짧은 일정이라 하지만 발목 무릎이 욱신거리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온 Vincent의 말대로 이 길은 강력한 치유의 힘이 있다하니 몸을 맡기고 걷는 수밖에 없다.


▼새벽의 어둠이 아주 천천히 걷히고 구름 낀 하늘을 본다. 오늘은 햇빛에 좀 덜 시달리겠다.

아직 어스름 어둠 속에서 새로운 순례자와 인사를 나눈다.

British Columbia 에서 온 Kate는 지금은 Mexico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Palms Springs에 살 때 Bettford Center에서 무얼 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리석었다. 그녀는 삶의 상처와 마약에 지친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 이길을 걷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했는데 불친절하게도 그녀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길만 재촉했다.



▼Jaqui는 Australia에서 왔다. 그녀는 So Lovely한 남자친구가 바르셀로나에 있기 때문에 순례가 끝나고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했다. 약속이 확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내와 남편으로 살아가야 할 나이의 사람들이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말할 때 좀 낯선 느낌이 든다. 다른 문화, 다른 스타일을 불편해 하거나 경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Jaqui를 처음 본게 Zubiri를 떠날 때 였을거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반대방향으로 걸어왔는데 일행이 숙소에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하는 길이라고 했다. 캔디스 버겐을 닮은 외모라고 했더니 그녀가 누구냐고 반문했다. 할 말 없음.


▼길에서 너구리 시체를 만난다. 나중에 Jaime가 스컹크라고 정정해 주었다.

죽음과 동행하는 것이 삶이다.

코엘료는 '순례자'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실험을 한다. '죽음'을 실체적으로 느낄 때, 현실 속에서 죽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런 일이라고 받아들일 때, 그러면 우리는 죽음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쇠락한 건물이어도 꽃이 있어서 풍파의 흔적이 정직하여서 낡음도 아름답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가끔 거꾸로 걸어오는 친구들을 만난다. 대부분 이미 산티아고를 찍고 돌아서 원래 출발지로 가너나 아님 다른 곳으로 걷는 순례자들이다. 그런데 이 친구 프란시스코는 좀 달랐다. 멀리서부터 보았는데 길 가운데서 한동안 우왕좌왕 망설이더니 걸음을 돌려 거꾸로 걸어왔다. 사연인즉은, 자신의 집은 바르셀로나이고 거기서부터 걸어오는 길인데 아무래도 산티아고까지 갈 시간이 안되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고 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가. 여기서부터 바르셀로나까지 걸을 시간이면 산티아고 충분히 갈 수 있고 그다음에 거기서 비행기나 기차로 돌아가면 될거 아닌가.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눈만 꿈뻑거리더니 웃으며 자기는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상식, 나의 주장, 나의 생각이 남들과 같을 거라는 망상때문에 한참 혼란스러웠다. 어쩃건 그의 얼굴에서 평화를 보았다.


▼Belorado의 시장 광장 입구에서 Dan을 맞이했다. 나도 이제 며느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내 며느리는 어떤 아가씨가 될까. 무조건 잘해 주겠지만 이왕이면 Daisy처럼 저렇게 시아버지 챙기고 상냥한 아가씨면 좋을 것이다.



▼배낭때문에 고전하는 MJ가 같은 알베에 들어왔다. 공부 본능은 여기서도 어쩔수 없는지 가이드북을 손에서 놓지 않고.


▼Daisy와 Jaime가 장을 봐서 저녁을 차렸다. Dan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서양음식은 국물이 없다. 오늘같이 흐린 날은 김치찌개가 정답인데. 부대찌개도 맞는 걸로 해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