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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23 Ponferrada - Pereje

Stage#23 Ponferrada - Pereje

Stage#23 Ponferrada - Pereje 10.1


달이 바뀌었다.

보름달 밝은 새벽에 걸음을 시작.

도시를 빠져 나오는 일은 늘 성가시다.

wifi가 없어서 지도 연구를 못한 탓에 템플기사단성을 빙글빙글 돌아 Ponferrda를 빠져 나온다.

YS와 Antonio가 오늘의 길동무다. 멀리가지 않아 영어강사도 합류.

Antonio는 Basque인이다. 빌바오(구겐하임 박물관이 있다 한다. 맨하탄에도 있는데) 근처에 사는데 총각이다.


▼YS는 부지런히 스탬프를 모은다. 카페콘레체를 마신 카페에서도 길모퉁이 성당에서도... 숙제 본능이다.

▼Antonio 그와의 첫인연은 Ages에서 호스피딸레로와 시비가 붙었을 때. 차분하고 총명한 친구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탓에 가속 페달을 밟아도 언덕에서 시원하게 속도가 나지는 않는다. 

출발할 때는 쌀쌀하던 날씨가 해가 뜨니 금방 뜨거워진다. 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좀 쉽게 지쳤다. 지쳐서 걷다보니 일행들도 없어졌다. 혼자만의 까미노에서 하나님과 은밀한 시간을 갖는다.

목이 타오른다. 재래식 방법으로 포도주 짜는 마을을 지나간다. 마땅한 가게도 없다. 아니 어쩌면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친 건지도 모른다. 계속 시골 포도밭을 지난다. 철이 지나서 따먹을 포도도 없다. 언덕을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갑자기 바닥에 작은 조롱박처럼 사과배가 무수히 떨어져 있다. 상태가 좋은 놈을 골라 이빨로 껍데기를 벗겨 먹는다. 꿀맛이다. 

잠시 기대어 기도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막내 대학합격을 기원합니다" 

그래 나는 기복하고 소원하는 신앙이다. 첫번째 소망은 '진정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포도짜는 집(포도방앗간?) 이 마을 지나서 사과배 세례를 받았다.


Villafranca는 예쁜 도시이다. 인구 5,000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관광명소인 듯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마을 입구 언덕을 내려오면서 성마르케스성을 지날 때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여수댁을 만난다. YS와 다시 합류. 

평판이 좋은 Albergue Diedra를 목표로 마을을 돌아 다리를 건넜다. 아스팔트 통증도 참으며.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우리앞에서 알베르게 침대가 끝났다고 한다. 

평판좋은 알베르게답게 친절하게도 자동차로 Municipal까지 데려다주겠다 했지만 길을 되돌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차라니!

자동차 타는 순례자는 천벌을 받으리라!

좌절이 밀려오지만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때는 일단 먹어야 한다. 

마침 길 바로 건너편에 Michellin 스티커가 붙어 있는 Restaurant을 발견. 송어와 와인이 나오는 순례자 메뉴를 시켰다(순례자메뉴가 때로는 호텔 고급요리 같을 때도 있다) Soup이 좋았다. 디저트로 나온 복숭아파이는 너무 달았고.

건너편 아일랜드 아저씨가 느긋하게 앉아서 송어를 즐기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 

창밖으로 낚시꾼들이 보였다. 먹은 만큼 잡아올려야 할 것이다.

아름답고 편의시설도 가득한 Villafranca를 포기한다.

한정거장 더 가기로 한다. 어차피 내일 가파른 산을 오르려면 조금이라도 올라가 두는게 좋다.


▼이렇게 만난 Pereje가 대박이었다.

웬만한 가이드북에는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은 자그마한 시골동네에 달랑 한채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2층 돌집에 단 7명의 순례자들만 들어와서 한적하고 편안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더구나 모두 1층 침대.

동네의 유일한 Bar Lento에서 일하는 잘생긴 청년 Vecent 가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로를 겸한다. 


아일랜드인 할아버지(트라우트 먹을 때 스페인어가 안되는 나에게 바디랭기쥐로 통역)는 웃통을 벗고 햇빛을 즐긴다.

저녁엔 순례자 모두가 Lento에 모여서 같이 식사. 이태리에서 온 비올라 켜는 친구는 생선 먹는 법을 물어보고 포크로 생선을 계속 뒤적인다. 전형적인 왕따 피해자처럼 보였다. 

동네가 작으니 갈데도 없다. 계곡이라 밤도 일찍 찾아온다. 벌써 해가 기운다.

추울 것이다.





▼알베르게가 아니고 가정집이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주부가 살고 있거나 까탈스런 남편이 좀팽이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