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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20 Leon - Orbigo

Stage#20 Leon -Orbigo

Stage#20 Leon - Orbigo 9.28


새벽 5:30에 길을 나선다.

숙취로 고전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Leon의 새벽거리는 밤의 열기가 아직 가라 앉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취한 영혼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도시를 빙빙 돌아 가까스로 탈출하듯 빠져 나와야 했다. 하루 쉬었으니 좀 더 걷기로 한다.


▼Leon을 빠져 나와 길가의 Bar에서 Cafe con Leche grande를 마시며 facetime을 했다.

둘째가 몰라보게 예뻐졌다. 매일 달리고 엄청나게 굶으며 다이어트 중이라 한다. 멕시코 여름캠프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씨에스타때문에 고생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진 김에 관리에 들어갔다하니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씨에스타의 수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아내는 우리집에서 살찐 사람은 이제 자기밖에 없다고 엄살이다.


▼집앞에 낡은 테이블을 내놓고 사과와 자두, 포도를 권하던 노인의 사진을 찍었다. 순례자를 돌보던 오랜 전통의 흔적이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스탬프까지 준비되어 있다. 까미노의 아침은 이러한 서프라이즈 덕분에 풍성하다.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공장지대 고속도로 마을... 걷기 편한 길은 아니다.

쉬지 않고 걸어서 예정의 San Martin del Camino를 통과, Puente de Orbigo에 도착.

33km. 

왼쪽 발목이 아프다. 길이 치유해 줄 것이다. 일일권장량 25km를 넘으면 역시 무리가 온다.


▼Villadangos 언덕길에서 차도를 벗어나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가다 만난 화살표는 Santiago가 300km 이내의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안내를 한다. 종일 도로따라 걷는 무료함 끝에 이러한 표식이라도 만나면 조금 위로가 된다. 근데 한참을 걸어가면 공식 도로사인은 아직 326km 남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야 할 것 같지만 이런일 자주 당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나의 목적이 "빨리 도달하는 것" 아님을 몇번이고 고쳐 생각한다. 

Villadangos를 지나오는데 한국인 아저씨가 주저 앉아서 힘든 표정이라 도움이 필요한가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발바닥 근저막염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 한다. 

왜?  무엇때문에 고통을 택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길을 가야하느냐고? 그런거 묻는거 아니다 적어도 길에서는.

▼ Orbigo는 길다란 다리가 인상적인 마을. 로마때부터 있던 다리가 중세를 지나며 증축되어 수많은 아치를 가진 산티아고 순례길의 아름다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다리 아래엔 창으로 마상 결투하는 경기장이 있었는데 이거 Las Vegas 호텔 엑스컬리버에서 본 쇼가 생각났다. 자료를 뒤져보니 이 다리 자체가 유명한 마상결투의 마초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34년 7월10일부터 8월9일까지 한달동안 이곳에서는 엄청난 결투가 있었다.

수에로 데 키뇨네스(Suero de Quiñones)가 그 주인공이다. 

그와 10명의 기사들은 전 유럽의 선수들을 상대로 이 다리위에서 합을 겨루자고 제안하면서 수에로 자신은 한달동안 창이 300개 부러질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선포했다. 그후 정말로 그는 승승장구 연전연승하여 166번의 결투를 끝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미션 컴플리티드를 선언하고 이 싸나이는 부하들을 데리고 홀연히 산티아고를 향했다. 싸움을 첨에 하게 된 이유가 어떤 부인한테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 하는데(그 부인한테는 아무짓도 못하고 엉뚱한 놈들한테 분풀이 한 셈이다. 남자들이 그렇다) 이 무지막지한 중세 UFC 선수를 모티브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썼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원래는 강바닥에서 결투를 했었는데 가끔 겁먹고 도망가는 놈들이 있었나보다. 그래서 다리위에서 원샷을 때리게 되니 말타고 전방질주하는 외에 퇴로가 없었으니 정말 화끈한 구경거리였을거다.



▼by FPG24E Selected for Google Earth [?] - ID: 73026819


▼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알베르게를 찾으려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냥 운에 맡기고 발 닿는대로 들르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다. Orbigo에 들어와서도 가이드에서 추천한 Albergue Verde를 찾으려고 시간을 허비했다. 주소를 불러주니 노인(아헬, ㅎ 발음이 러시아어 X와 같다)이 손잡고 데려간다. 근데 잘못된 주소. 결국 포기하고 San Miguel에 거처를 정한다. 벽에 순례자들의 그림이 잔뜩 걸려있는 알베르게.

Holland인 Ton을 다시 만난다. Italy Milan에서 온 Federico와 그의 친구는 아베크롬비 모델이 목표란다. Leon에서 내 침대2층에서 자던 친구들이다. 한국여인 HJ와 처음 인사한다. 채식주의자!





▼ 마을을 돌다 이곳에 들러 순례자메뉴를 시켰다. 


▼ 밥 먹고 돌아오는 길 이웃 알베르게를 찾았다. 혹시 Morgan 가족이 있나 궁금해서 였는데 Leon에서 하루를 머물렀기때문에 얼추 거리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을 찾지는 못했다. 대신 오늘 걷다가 보았던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79세, 우리 나이로 80이 넘었을 Joyce Brown 할머니는 Oregon에서 왔다. 걸음이 위태로워 보이고 파킨슨병인지 머리를 가볍게 흔들지만 꾸준히 걷는다.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내 이멜 주소를 물어온다. 이멜 주소를 정리해 두어야겠다.


Post Santiago를 준비해야 한다.

아득아득 먼 길이라 첫걸음 디딜때는 끝이 없을 줄 알았지만

마침내 그날은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겁나는 세월이다. 

결코 가만히 두는 법이 없는 벅찬 시간들이다.

그래서 신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