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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19 Mansilla - Leon

Stage#19 Mansilla - Leon

Stage#19 Mansilla - Leon 9.26 


Leon은 Camino에서 두번쨰로 큰 도시이다.

로마의 군단(Legion)이 있던 곳이고 이후 무어인 기독교인들의 쟁탈전으로 주인이 바뀌었던 도시이니 당연히 다른 문화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이곳이야 말로 중간결산하고 하루 더 머무르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지자체 알베르게가 공사중이라 하여 사설 Ademar를 숙소로 정했다. 2012년 새로 오픈했다는 정보가 솔깃하였는데 이곳은 Spain에서 상당히 알려진 프로페셔널 핸드볼팀이 속한 회사에서 운영하는 장소, 대학의 게스트룸으로도 사용되는 대규모 종합 레즈던스이다. 세탁기 공짜이고 통금도 없이 비밀번호 눌러서 자유롭게 드나드는 조건이라 이곳을 택했는데 여기서 '사건'이 생긴다. 


▼비가 내려서인지 좀 우울했던 Masilla를 등지고 새벽을 나서자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게 된다. 

순례자의 표식 가리비조개는 처음에 그냥 남들이 다 달고 가니까 나도 따라 했던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필수적 동반, 순레자의 마패, 영험한 수호물처럼 되어간다. '의미와 상징'은 믿음의 영역이다. 믿음의 문제는 맞고 틀리고 옳고 그르고의 잣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절대적 순종 가운데에서 출발한다. 나같이 의심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은 높은 산이고 깊은 바다이다. 순전한 믿음, 온전한 사랑에 몰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리비'의 믿음을 운반하는 축복의 아침이다. 



▼믿음은 기적을 낳는다고 한다. 기적은 대부분 객관적이지 못하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역사' 유태인들에게는 '기적' 디스커버리채널에게는 조수간만과 폭풍의 기압차에 의한 '자연현상' 등으로 달리 해석될 것이다. 그러니 기적조차도 믿음의 영역이 되버린다. 첫날 피레네를 오르다가 달팽이를 만났다. 서두르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는 '계시'로 정의했다. 오늘 아침 다시 달팽이를 만난다. 이녀석이 피레네에서 출발하여 나를 앞질러 여기에 먼저 와 있었다고 전제하면 나는 분명한 '기적'을 선물받는 것이다. 그래 너무 서둘러 앞만보고 달려왔는지 모른다. 이래저래 레온에서 하루 더 머물러야 할 이유가 늘어난다. 하루 쉰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훨 가볍다.



 ▼ YS와 JK에게 너무 오래 동행하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회를 방해하고 서로에게 적응되어 까미노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작별'하자고 선언. 당연히 최후의 만찬이 없을 수 없다.

Michellin 스티커가 줄줄이 붙어 있는 Restaurant Prada de Tope에서의 저녁식사는 물론 훌륭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감동이었던 것은 우습게도 맥도날드.Leon의 입구에서 맥도날드 간판을 보았을 때부터 반가왔는데 막상 알베 근처의 안내 간판에서 300m 표지판을 보고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강변 숲에 가려져 있어 한참 헤맨 끝에 찾아내었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 버거킹이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점심시간인데도!) Leon McDonald의 Big Mac Set에는 디저트 sundae까지 따라 나왔는데 이곳 물가에 비추어 비싼 편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혹은 스페인의 훌륭한 메뉴에 비추어 쌍스런 미국의 정크푸드를 경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콜라 리필 같은건 없었다. 카페에서도 커피 리필 없다. 더 먹고 싶으면 돈 내야한다. 미국이 헤픈 나라이다.




▼Leon은 며칠을 머물며 둘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한다. 6월, 10월에는 축제도 벌어지는데 황소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까미노 생각은 좀 다르다. 세속에서 아주 멀어질 수는 없지만(Shame on you, 맥도날드를 보고 반가와하다니!) 관광지와 축제를 따라가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순례의 주제에 적합한 장소,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은 자연스럽겠지만 구태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답사와 같은 트랙을 밟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길에 집중하고 외로울 때 까미노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Leon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우선은 레온대성당(Burgos보다 규모는 작은데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가 특징이다. 고딕양식) 가우디의 건축물(Casa de Botines 신고딕양식), 성 이소도르왕립 대성당(로마네스크), San Marcos(르네상스와 이슬람의 짬뽕) 등등 수도 없다. 

꼭 가이드북 들고 유명한 건물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따라 걸으며 이천년 고도의 정취를 느끼며 기웃거리는 재미가 괜찮다. 물론 맥주와 와인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맛있다.




숙소 Ademar Albergue는 San Francisco광장에 가까이 있어서 여러모로 다니기 편했다. 슈퍼에 가서 분말세제를 사다가 오랫만에 세탁기 빨래를 했다. 라네로에서 와인을 따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근처 중국인상점(만물상)에서 와인오프너와 옷핀을 구입. 옷핀은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걸어갈 때 유용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도 도움이 된다. 빨래집개보다 낫다는게 순례자들의 중론.

밤늦게까지 알베르게에서 우리끼리 farewell party. Vino 많이 마셨다. 알콜은 사건사고의 어머니. YS 핸드폰 분실사건은 와인의 추억과 함께 시작된다.


▼레온에 들어와서 한참 도시의 아스팔트를 걷다보면 지치게 되는데 갈림길 부근의 자그마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주인이 친절하고 커피와 함께 나오는 츄로스가 맛있어서 다시 찾기로 한 카페.


▼외딴 시골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늘 도시에서(그래봤자 인구 15만) 미아가 되고 촌놈이 되어 헤맨다. 순례의 하루에서 걷기가 끝나고 남는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간다. 거리에서 헤매는 시간은 눈물 나도록 아까운거다. 물론 다음에 가면 그런 실수 다시 안하리라 다짐하지만 글쎄 기억을 믿을 수 있을까? 기억보다는 기록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