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D-2 Paris

D-2 Paris

    비행


    경험에 의하면 비행이 5시간 넘으면 힘들다. 

    서울을 기준으로 동남아까지는 견딜만 한데 서쪽으로 중동, 유럽,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미국 중남미가 다 아홉시간 이상이라 지루하고 괴롭다. 제일 좋은건 푹 자는건데 이게 잘 안된다. 비행공포증 때문이기도 하고 하여간 비행기에서 못자는게 늘 고민이다. 이거 극복하는 방법 몇가지 실험해 봤는데...


    1. 영화/ 아무리 영화 좋아해도 작은 화면에 어색한 성우더빙으로 연속 두편 이상 관람하기 힘들다. 
    2. 멜라토닌/ 수면제와 수면유도제의 차이를 알지 못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번 복용해 봤는데 한번에 대여섯 시간 잘 수는 없었다.
    3. 술/ 제일 싸게 치는 방법이긴(공짜) 한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기압이 낮고 건조한 탓에 한 30분 곯아 떨어졌다 일어나면 머리가 뽀개진다. 예전에 일행들과 갤리에서 폭탄주 만들어 죽어라 마신 적 있는데 한숨도 못자고 힘들어했다. 멜라토닌 대신 와인 한두잔 정도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4. 책/ 멜라토닌이나 와인 보다 조금 우아해 보이는 수면유도제
    5. 잡담/ 글쎄 뭐 우연히 옆자리에 이미숙이 앉았다 해도 두시간 넘게 수다 떠는거는 자신 없다. 함께 가는 일행이건 우연히 만난 사람이건 아무리 말 잘하고 매력있는 파트너라 하여도 항공소음을 BG로 깔고 하는 대화 쉽게 지친다. 잘 알지 않은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사람에게 싫증내는지.
    6. 과제/ 현재까지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출발전에 기내에서 할 숙제를 스스로 정해서 몰두해 일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간다. 주로 컴에 있는 사진정리가 좋은 아이템인데 아무리 정리해도 끝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는 주제 에세이 하나 쓰거나 작곡 같은 무모한 도전도 괜찮다. 작곡 하려면 작곡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이거 비행기가 지구 한바퀴 돌아도 끝나지 않는다.  


워낙 급하게 출발한 여정이라 기내에서 이것저것 고민할게 많았다. 가이드북도 없이 그냥 나선 길이라 루트에 대한 학습도 부족. 그렇다고 인터넷 안되는 기내에서 딱히 공부할 것도 없다. 결국 고민만 하면서 와인 마시고 멀뚱거리다보니 파리 도착. 샤를드골 공항은 18년 만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열차를 이용해서 가게 된다. 유럽은 유레일을 비롯한 열차노선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미국은 비행기 유럽은 기차. 물론 미국도 대륙횡단철도부터 도시근교철도까지 없는거 없고 유럽도 각종 저가항공이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는 얘기다.


옆길

얘기하다보면 옆길로 새기도 하는거다. 살다보면 늘 바른 길만 가는것도 아니다. 


라이트형제 이후 미국은 넓은 땅 덕분에 항공산업을 부지런히 발전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공항이란 공항을 다 긁어모으면 19,700개, 이중 연간 2,500명 이상의 승객에게 상용서비스 하는 공항만 503개다.(우리나라는 15개) FAA(미연방항공청)에 등록된 비행기수만 374,161대라고 하니 가끔 음주비행하다 추락하거나 고속도로에 착륙하는 것도 별로 놀랄일 아니다. 반면에 유럽은 철도의 역사를 자랑한다. 1814년 영국의 스티븐스가 증기기관차 발명한 이래 철도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독일의 디젤, 스위스의 산악열차, 프랑스의 TGV, 영국의 대열차강도(?) 아마 데이비드 니븐이 주인공이었던 것 같은데...

IMDB 뒤져보니 "대열차강도"는 1903년도의 고전이고 내가 생각한 영화는 원제 "Le Cerveau"(The Brain)이라는 프랑스영화였다. 쟝폴벨몽드와 데이비드 니븐이 나온 1969년 코미디인데 미칠 듯 재미있어서 어쩔줄 몰라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이 열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데이비드 니븐이 열차 지붕에 오르려고 갈쿠리가 달린 밧줄을 던지는데 마주 오는 열차에 걸려서 밧줄을 잡은 장갑이 연기가 나도록 타들어 가던 씬에서 당황하던 표정이 생각난다. 핑크 팬더의 원조. "나바론요새"와 "80일간의 세계일주"에 출연. 가장 좋아했던 코미디 배우. 다시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표 사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대화해야 하는데 이친구들 영어와 내영어가 충돌할 가능성이 많다. 프랑스는 영어에 인색한 나라다. 따라서 말없이 표 내주는 기계를 찾게 된다. 기계가 많아서 줄 서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는 돈버는 도구를 표준화했다. 어디가나 비자, 마스터카드 로고가 보이고 그걸로 안심이다. 어차피 돈은 '상징'이다. 실질가치로 교환되던 금덩어리를 포기한 이후(금본위제는 미국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대통령때 폐지되었다. 음모론에 따르면 이거야말로 로스차일드 같은 금융재벌가들의 드림이었다고 한다. "화폐전쟁" 쑹홍빙) 돈은 권력에 대한 신뢰(또는 복종)를 상징한다. 그 상징은 지폐에서 플라스틱 카드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손쉽게 낭비할 수 있게 해준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충고에 따르면 그 플라스틱 조각은 우리가 정승이라는 표식이다. "난 비자 정승이라고 하도 그댁은 마스터 가문이시군"

물론 잔고가 남아있을 때만 말이다.


Paris


1994년 5월 25일 paris에 도착햇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일정상 빠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이틀밖에 없어서 호텔방에다 짐 던져 놓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서 에펠탑만 보고 걸었다. 문제는 신발. 아내는 첫번째 유럽여행을 위해 새신을 준비하셨고 도착하자마자 강행군 하느라 발뒤축이 금방 까졌다. 그바람에 루브르는 입구에서 좌절, 매번 절룩거리며 다녀야했고 에펠탑 올라가서는 탈진(첫번째 구간을 엘리베이터 안타고 걸어서 올랐다. 운동 겸 오르면서 풍경 보자고. 오르는데 무슨 풍경이 있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중요한 팁 하나. 


새신발 반드시 헌신발 만들어 놓고 출발할 것.



우선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저녁을 맞이하리라 마음 먹는다. 북역에서 TGV를 예매할 수 있다. 근처에 맥도날드도 있다하니 와이파이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져간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으로 TGV  홈피에서 직접 예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결재방식은 보안때문에 해외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 예매를 대행하는 에이전트들도 있다. 또 어쩌저찌 예매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바교적 다양하게 올라와 있는데 좀 오래된 경우엔 적용이 안될 수도 있어서 여기저기 뒤져봐야 한다. 실제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Paris-Bayonne-Saint Jean 구간은 한국서 예매하지 않더라도 현지예매를 통해 표를 해결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샤를드골 공항에 내려서 공학노숙 하고 바로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한국서 표를 예매해 두는 것이 편할게다. 지하철 타고 북역에 있는 SNCF 사무실을 찾아 일단 TGV 예매. Monparnasse역에서 새벽에 떠나 Bayonne을 거쳐 Saint Jean Pied de Port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대부분이 택하는 French Way의 진입경로이다. 과연 북역에는 줄 많이 안서고 금방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맥도날드는 시간이 없어서 생략. 바로 몽마르뜨 언덕을 찾아갔다. 

대체텍스트기차표 판매소. 마감시간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옛날 기철이가 삼청동에서 하숙할 때 담배 떨어지면 종로2가 지하철 역을 찾았었다.




몽마르뜨르 언덕, Montmartre


역에서 제법 걸어야 한다. 언덕길엔 관광객들 편하게 가라고 케이블카도 있다. 정말 멍청한 아이디어 아닌가. 몽마르뜨는 언덕이 전부다. 무슨 등산도 아니고 정상정복이 목표도 아닌데 무슨 케이블카? (관절염이 있거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치 못한 오만. 그러나 건강한 당신은 걸어서 올라가라) 


걸어서 도착한 사크레쾨르 성당앞은 끔찍했다. 조잡한 기념품과 맥주를 파는 상인들과 엉망진창 어울려진 관광객 양아치들이 빠리에서 제일 높은(해발 129m) 이곳 예술가들의 언덕, 일몰의 어둠속에서 흥청거리고 있었다. 라비크가 안개낀 거리를 서성이며 비스트로를 찾아 깔바도스 한잔에 목을 축이던 "개선문"의 거리. 마르셀을 잃은 에디뜨 삐아쁘가 목놓아 부르던  "Hymne a L'Amour"가 울려 퍼지던 빠리. 여기가 거긴가 싶었다. 아니다. 그게 아닐 것이다. 스스로 설정한 편견 이미지, 겨우 손바닥 만큼 알고 있는 내관념의 빠리에 집착한 촌스런 여행객의 감상일 것이다. 어차피 물랑루즈와 캬바레, 정신착란으로 자신의 귀를 베어내는 화가와 창녀들이 뒤섞여 함께 노래하고 살며 사랑하던 환락과 예술의 도시, 그모습이 이모습일 것이다. "Les Miserables"이 19세기에만 있었겠는가. 어쨋건 몽마르뜨르 언덕 위에 내가 앉아서 빈둥거릴 만한 자리는 없어보였다. 궁뎅이도 시리고. 도피하듯 성당안에 들어가 잠시 미사에 참석. 예수께서 분노하시던 성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속세와 성전은 대척점에 있지 아니하다. 공존함으로써 가치있고 의미있는 둘이고 하나이다. 나는 세속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거룩에 다가가는 경험을 꿈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날마다의 '작은 기적'을 흠모할 것이다.





내가 걱정하건 말건 싫건 좋건 골목은 사람들의 발자국 고함소리 토약질 그리고 불꽃같은 사랑의 고백과 황혼의 위대한 '채색'으로 피고지며 변화하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고 예술이고 다 사람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카페 앞에서 서성거렸다. 라비크 흉내를 내거나 한잔의 와인 정도는 마셔야 몽마르뜨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발길을 돌렸다. 이미 순례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한 장소에서 공허한 시간 보낼 수는 없었다.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가 속한 세상을 멀리하고 싶어서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구분과 격리가 나를 이롭게 하거나 의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속한 세상, 내가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잊고 지내는 이름, 찾지 못하는 모습, 그 모습이 그리워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길을 나선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의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