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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8 Logrono - Najera

Stage#8 Logrono - Najera

Stage#8 Logrono - Najera

9.15 29.6km


새벽길을 나선다. MJ와 여수부부가 배낭 보내려 우리 Albergue로 왔다. 그쪽 알베르게에서는 하꼬트랜스 서비스가 오지 않는다 한다. 어제 Daisy에게 Dan의 생일선물을 맡겼다. 아무래도 댄이 페이스를 따라잡기 힘들 것 같고 난 이제부터 좀 달릴 작정이었다.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만 기약은 없다. 


▼마을 어귀에서 Vincent를 만났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막 떠나려 준비하고 있던 그와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눈다.

머리 말끔히 단장하고 수염도 밀었는데 어제 미장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Hair Stylist의 주말? 그의 손에 담배가 들려있다. Saint Jean에서 출발 전날밤 길게 한모금 하며 이게 마지막 담배라 했는데. 나는 수염을 한번 길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평생 한번도 수염 길러본 적 없다. 큰아들 말에 의하면 우리 유전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기때문에 안된다고. 전문가 뱅생은 나의 턱을 이리저리 보더니 3주 정도 더 기르고 다듬으면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역시 맘이 넓은 친구다. 


어제의 와인파티를 회개하는 의미에서라도 오늘은 먼길 서슴치 않고 갈 것이다. 한국대학생들 중 JS는 하루 더 머물며 춤을 추려하고 다른 이들은 각자 다른 속도로 길을 갈 것이다. 목표는 같아도, 가는 길은 같아도 보폭은 다르고 생각도 다른거다.


▼투우의 나라. 살육과 침략과 약탈의 나라. 동키호테의, 정열의 나라. 다 같은 나라.

 


▼Navaretta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곳은 성모승천교회에 이르는 언덕길 따라 오래된 집들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잇는데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들이 눈에 띈다. 동네 슈퍼에서 사과와 토마토를 샀다. 어김없이 성당앞 광장에는 샘(fuente)이 있고 쉬어갈 수 있는 그늘과 앉을 곳이 있었다. 


▼이 사진도 제목을 갖는다. "순례자의 점심"


▼며칠전부터 눈의 띄던 개성있는 사나이 곱슬머리 Luca와 드디어 정식으로 인사. Luca는 Italy에서 왔는데 직장에서 짤리고 대책없이 까미노를 향했다고 한다. 늘 담배를 손수 말아서 핀다. 내게도 권하길래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다니 만날 수 있으면 그때 한모금 하겠다고 했다. 함께 있는 여자는 체코에서 왔다고 한다.



Alto de San Anton. 살짝 오르막인데 이어폰을 꽂았다. 윤도현, 도움이 된다.

정상을 넘어선 곳에 작은 winery가 있다. 쇠락해 보인다. 

잔뜩 익은 포도가 가까스로 달려있고 땅에 뒹구는 놈들도 적지 않다.

나무 그늘에 앉아 물한모금 하고 멀리 Najera 쪽을 본다.

광활한 평야. 2시간 거리쯤 남았을까 3시간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하다.


▼가는 곳마다 작은 규모의 와인공장을 만난다. 보르도의 간계한 마케팅때문에 자신들의 우수한 와인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스페인, 그것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는 단돈 2유로(3000원)면 신토불이 동네와인 한병이다.  


▼길가에 늘어선 포도밭을 지나다보면 "농민들이 피땀 흘려 가꾼 포도입니다. 함부로 따먹지 맙시다" 같은 경고판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무방비다. 실제로 순례자들은 종종 포도를 따먹으며 길을 간다. 송이째 들고 가는 사람들도 더러 보았다. 농민들도 별로 괘념치 않는 눈치다. 1000년 순례의 전통때문인지 철지난 포도라 수확이 이미 끝난건지 확인하지 못했다. 포도는 알이 작고 당도가 매우 높다. 



▼기사 롤랑이 이곳까지 와서 아랍의 거인을 물리쳤구나. 역사와 전설, 사실와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는 길을 간다.


▼ 2009년 7월 25일 스물아홉 짧은 생을 마감한 잘생긴 청년 James Winters의 추모사진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어떠한 죽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리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아요. 신이 나를 원하고 그가 나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고 적인 표식 앞에서 눈물을 삼켰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치유되거나 극복되지 못할 운명을 향하여 나아갈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용기이고 무엇이 지헤인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살아야 한다. 주어진 길을 주어진 시간을, 가족과 친구들과 기쁘고 슬픈 것들을 어루만지며 함께.





Najera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들어온다(순례자들에게 별로 관대하지 않다는). 도시 입구에서부터 오후2시의 잔인한 태양이 순례자를 지져대는 통에 탈진한 채 거리를 통과한다. 발바닥에서 불이 붙는거 같다. 뭔가 도시 모양이 어글리하다. 배낭을 미리 보냈지만 오늘은 힘든 하루였다. 와인파티의 댓가일 것이다. 내일은 새벽에 나서자 결심한다.

minicipal albe는 최악이었다.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닌데 몹시 복작거렸고 공장형 건물의 샤워시설 등은 많이 낡은 편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Morgan Family와는 헤어졌다. 당분간 연락이 어려울 것이다. Dan에게 줄 생일선물을 미리 며느리 Daisy에게 맡기길 잘한 것 같다.

▼지쳐서 멍하니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있는데 첨보는 이가 사과 하나를 건넨다. 


▼지자체 숙소(Municipal Albergue를 굳이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에서 강을 따라 메르카도 광장 쪽으로 나오면 카페가 많이 있다. 배고 고프고 지쳐서 사람 없는 한적한 카페를 찾은게 결정적 패착. 정말 다시는 다시는 스페인에서 스파게티 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결심한다. 스파게티 주문하니까 비닐 포장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갖다 준다. 배고픈 순례자 되고 나서 음식 처음으로 남겼다.


▼마을 축제가 있는 날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주민과 어울렸다. 숙소에 들어와 자려는데 밤 11시 넘어서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일부는 마당에 나가 구경하고 일부는 투덜거리고. 누구에게는 축제의 밤, 누구에게는 불면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