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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7 Los Arcos - Logrono

Stage#7 Los Arcos - Logrono

Stage#7 Los Arcos - Logrono

9.14 28.1km


까미노를 걸은지 일주일째.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Los Arcos를 빠져 나오며 오늘은 어제 못한 숙제를 해야한다고 각오. 하지만 하꼬트랜스(Jakotrans, 배낭 등의 짐만 보내주는 택시 서비스)를 이용 배낭을 먼저 보낸 탓에 발바닥이 지면에서 5센티는 떠가는거 같다. 이거 버릇되면 곤란한데 무릎때문에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크로스가방에 필수품만 넣고 지팡이 짚고 걷는다. 또 다른 새벽


▲그녀의 이메일주소를 챙겨두지 못한게 아쉽다. 도자기 관계일을 하는 독일여자인데 한국도 방문했다한다. 찍힌 사진을 LCD로 보고 꼭 보내달라 했는데... 

▼오르막에서 여전히 힘겹게 비틀거리는 MJ를 만난다. 손에 든 묵주가 눈에 띈다. 그녀의 등을 밀어주는건 무슨 소망일까.


▼우리의 로드러너 제이미가 쌍벽의 호적수를 만났다. 독일에서 온 Daniel은 내가 본 그 누구보다 까미노를 속보로 걷는 친구다. 어제 무지개길에서 나와 같이 걸었던 Dennis의 친형이다. 이 친구도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제이미가 다니엘과 같이 걷는(또는 뛰는) 모습은 이 친구들이 왜 까미노에 왔는지 이유가 명백해 보인다. 어쨋건 정말 빠르다. 


▼오늘 길에 몇차례 업앤다운이 있다. 오르막내리막... 골프가 조금 그립다. Viana에서 점심을 먹기로 마음 먹었는데 마을 입구에 마침 장이 열렸다. 가는 곳마다 마을의 중심광장에는 이렇게 야시장이 열리는데 오후 씨에스타가 되면 모두 철수해 버린다. 사과 천도복숭아 바나나 샀는데 1.2€. 산타마리아성당 앞에서 신발 양말 벗고 휴식. Mikkel은 혼자 뭔가를 열심히 먹는데 다시 외로워 보인다. 그냥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열아홉의 고독을 즐겨라. 한국인 그룹 중 한분이 다가와 삶은 계란을 건네준다. 처음으로 인사. 계속 모른체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광장'의 여유를 충분히 즐겼다. 손자와 함께 나온 동네 할아버지가 아르르르... 아기를 얼르는 모습은 우리과 다를바 없다.

▼산타마리아 성당앞 Plaza de Los Fueros Viana의 중심광장은 활기가 넘친다. 인구가 3천5백 정도라는데 순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Viana를 떠나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Rioja의 수도 Logrono로 들어선다. Navarra주에서 Rioja주로 들어선 것이다. 프랑스에 보르도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리오하가 있다. 물론 신토불이라고 가는 곳마다 있는 지역의 술을 마시는게 주당의 기본인만큼 리오하에서는 리오하산 포도주, 나중에 갈리시아에 가면 갈리시아 와인(있는지 모르겠지만)을 마실 것이다. 중국에서도 그랬다. 대부분의 중국명주는 귀주를 본산으로 하고 있지만 지역마다 각각 지방의 술이 있는 탓에 그를 무시하는건 도리가 아니다. 해서 마셨던 계림의 술은 정말 달고 맛이 없었다. 좌우지간 이제 제대로 된 스페인의 와인을 마실 수가 있겠다. 빵과 와인이 소설책, 역사책, 심지어 성경에서 그렇게 자주 인용되는 까닭을 알듯하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Vincent와 Florence, 가짜 수도승 Jean Claude를 만났다(지난번에 밝혔듯이 그는 진짜 신부님이었다. 근데 이때까지도 나는 그가 개그맨 흉내내는 웃긴놈으로 알았으니... 신부님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다리 건너기전에 강을 따라 순례자들을 위한 족욕탕을 발견했다. 틀림없이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가라는 모양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냉족욕을 했는데 대부분의 지친 Pelegrinos들이 무심코 그냥 지나쳐 아쉬웠다.



▼Puente de las Revelling 에서 잠깐 혼란이 있었다. 까미노를 걷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는 늘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아래 먼길을 걸어 온 다음 도착한 마을에서 숙소 찾느라 우왕좌왕 이삼십분(팜플로나에서는 두시간을 날렸다) 허송하면 정말 시간과 체력이 아깝다. 로그로뇨는 인구 13만의 중소도시로서 라 리오하의 주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순례자는 생전 처음 와보는 곳이다. 도시에서는 노란화살표나 까미노 표지판도 헷갈리는게 계속 다음 행선지를 가르키는게 대부분의 화살표인데 우리는 저마다의 숙소(알베르게)를 찾아야하니까 미리 주소가 파악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엔 무작정 알베르게 안내 표시를 보고 가다가 남의 알베르게를 찾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고 내 주소 손바닥에 적어가도 길에 사람이 없다. 워낙 뜨거운 동네가 되서 그런지 길가엔 사람들이 드물다. 도시에 이르기까지는 순례자들이 좁은 산길, 시골길따라 한방향으로 가지만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각자의 숙소 또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흩어진다. 로그로뇨에서도 좀 헤매다 알베르게를 찾았다. 뜨거운 태양. 씨에스타 시간이라 온 도시에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운 좋게 행인을 붙잡고 물어본다해도 영어가 통하기는 쉽지 않다.


▼겨우 알베에 도착해서 막 침대를 배정받는데 제이미가 들어와서 같이 Bar로 직행. 둘 다 엄청 배가 고팠는데 비슷한 순례자 두명이 합석. 내일 집으로 돌아 간다는 Catrina는 영국에서 왔고(여기서 영국은 Britain이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는 더 이상 영국이 아니다. 헷갈리는 유럽 정치사) 또 다른 친구는 San Francisco에서 왔다. 세개의 서로 다른 액센트 사이에서 힘들었다. 때로는 사람이 말(언어)한테 얻어맞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넷이 Vino Blanco를 금방 비웠다.


▼이 사진은 합당한 제목을 갖는다 "La Siesta" 낮잠이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그냥 씨에스타이다.


▼이층침대에서 상석은 당연코 아랫쪽이다. 가능하면 아래층 달라고 늘 부탁했다. 이층에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온 카르멘의 후예, 아래층에는 이천에서 온 동양의 소녀. 오늘밤을 함께 할 나의 이웃이다. 남녀노소 혼숙이 더 이상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일주일이면 정말 펠레그리노(Pelegrinos, Pilgrims), 순례자의 모습이 된다. 순례의 목적은 저마다이겠지만.


▼카르멘(그녀의 실제 이름은 Alonso였고 영어가 능통)이 포즈를 취해줬다. 그녀는 팜플로나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전구간을 완주하지는 않고 며칠후 집으로 돌아간다고. 스페인 사람들이나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그런식으로 나누어서 순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말의 기대가 있었다. 해가 이슷할 무렵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한국인들끼리 연락이 되어서 같이 저녁에 뭉치기로 했다기에 인사차 합류. 목동부부 2쌍, 여수댁부부, MJ, YJ, JS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 성당옆 식당에서 저녁을 샀다. 근데 Tortilla를 판째로 몇개 시켰는데 이게 미국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사먹는 뜨르띠야와는 전혀 다르다. 어쨋건 맥주 곁들여 즐거운 식사. 


이후 젊은 친구들만 Wine Party. 까미노에서 처음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주말이 되었다. Brazil의 Jamil과 그의 친구 Eric(그는 Rio de Janeiro에서 왔는데 축구팀 바스코다가마의 광팬이라고 한다)과 노르웨인 남자, 스페인 여인 Nuria가 합류하여 Bar에서 Bar로 점프하며 계속 마셔대는 Spain식 파티를 즐겼다. 여자애들이 좀 취한 듯 하여 적당히 끊고 귀가시켜야 했다. 사감노릇하는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함께 어울린 이상 '부모노릇'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