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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4 Pamplona - Puente la Reina

Stage#4 Pamplona - Puente la Reina

Stage#4 Pamplona - Puente la Reina

24km


이른 아침 혼자 길을 나섰다. 

어차피 보폭이 다르기 때문에 부러 일행을 만들어 계속 같이 걷는 일은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순례 초반이라 혼자 수행하는게 낫다 싶었다. 도시를 빠져 나오면 홀가분해지면서도 좀 섭섭하다. 아무도 나 붙잡는 사람 없다는 사실 때문인가. 먼 훗날 정말 먼 길 떠날 때, 그때도 아무도 나 붙잡는 사람 없으면 정말 쓸쓸한 일일 것이다. 



▼역사정신을 강조한 역사철학에 매료되어 청강을 다닌 적이 있다. 대학시절 신일철교수의 강의를 좋아했었다. 실은 역사철학의 내용은 잘 모르면서 스타일과 스토리를 좋아했었나보다. 세상을 이해하는, 인생을 해석하는 방법과 '이야기'에 관심있던 시절이었다.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또는 역사가 생명력과 감성을 그 속에 내재하고 있다면, 역사도 우리처럼 늘 이성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때로 그 역사 속에서 광기를 보기도 한다. 개인이거나 집단의 무모한 집착과 이해할 수 없는 모순, 비이성적인 행동과 전통 그런 것들에서 광기의 피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전쟁과 폭력적 행동(스포츠 중에도 꽤 있다)이 대표적인 광기의 증거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 탐욕에 기초한 것이지만.


San Fermin 축제기간 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달리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술과 약에 취한 상태라 한다. 그래서 다치고 죽는다. 소는 광기의 주체가 아니다. 그저 광기에 휘둘려 당황하고 놀라고 분노하여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위협을 뿌리치며 몸부림치며 골목을 달려 죽음의 아레나에 이를 것이다. 사람들은 달린다. 실로 진정한 맹목성의 피잔치이다. 피를 보기 위해서이다. 터질듯한 심장의 박동, 금방 넘어갈 듯 가쁜 숨을 삼키며 골목을 달리는 이들이 즐기는 공포는 가히 악마적이기까지 하다. 관객들은 어떨까? 관객들의 호흡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는 무엇일까? 폭력의 인류역사를 지켜보았던 우리가 관객일때와 현장인일때는 너무 다르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골목을 달려야 한다. 우리는 소몰이꾼인가 소인가?

▼소몰이 박물관. 할 말 없다. 이른 아침이라 들어가보지 못했다. 







▲Navarra 대학교 입구. 팜플로나를 벗어나면서 수업들으러 가는 청년들은 좌로, 까미노를 걷는 덴마크 청년 미켈은 오른쪽으로.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죽을래 살래?

▼유래없는 가뭄때문애 해바라기가 타 죽어있는 광경을 계속 보게 된다.


▲분실물(LOST AND FOUND, 모자 이어폰꼬다리 지팡이) 아침에 짐을 꾸리다보니 모자가 없어졌다. 아직 태양이 뜨겁다. 선블락을 반드시 발라야 한느데 첫날 딱 한번 바른 이후로 그것도 귀찮고 사치다 싶어 크림을 팽개쳐 두었는데 모자마저 없으면 곤란하다. 새벽출발이라 살 수도 없다. 오늘은 완전 바베큐가 될터이다. 팜플로나를 빠져 나와 Cizur Menor(팜플로나의 부유한 교외주택가. San Miguel 성당이 있다)를 끼고 걷다가 문득 페르돈고개를 오를 때 강산에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로 오르는 연어들처럼"이 딱 듣기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이어폰을 세팅하려고 보는데 어라, 이어버드 한쪽이 달아나고 없다. 세상에 모든 이어폰들의 문제가 바로 이놈이다. 이어폰 뺄때 귓구멍에 남아있거나 쉽게 빠져 달아난다. 이어버드 없으면 이어폰 듣기 곤란하다.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거슬러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찾았다. 리듬도 깨지고 팜플로나 이후 목도 마르고 해서 마을 빠져나가기 전 자그마한 공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스페인 마을 체육관에서 이른 아침부터 핸드볼(우리가 아는 핸드볼 말고 공을 벽치기 하면서 맨손+핸드볼공 으로 하는 라켓볼 같은 경기)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물 마시고 다시 출발. 한 일킬로 가까이 걸었다. 멀리 산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뿔사 이번엔 지팡이를 두고 왔다. 오늘은 흘리는 날인가 보다. 또 다시 "걸어온 길을 또 거꾸로 거슬러 걸어가는 멍청한 순례자처럼" 걸을 수밖에. 이번에도 아까 앉았던 그자리에 얌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지팡이. 사실 이놈을 쌩장에서 살 때 별로 맘에 들지 않았는데 종류가 딱 두개밖에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산거다. "한국서 두랄루민으로 된 좋은 지팡이 사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은근 구박하며 막 다룬 지팡이인데 이녀석 주인이 팽개쳐도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서 기다려주다니! 급 사랑스런 지팡이가 되었다. "사랑은 받느니보다 주는게 더 행복하나니라" ?? 청마는 그러하시온지 모르겠으나 저는 받는게 마냥 좋습니다. 잃어버린 모자도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해가 올라오면서 얼굴이 익기 시작한다. 까미노는 마냥 서쪽으로 가는 행로다. 북반구인 관계로 해는 늘 남쪽, 즉 왼쪽에 있다. 나의 왼쪽뺨은 시방 지글거리는 한여름이고 오른쪽뺨은 서늘거리는 초가을의 냄새가 난다. 정말 뜨겁다 스페인의 태양. 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멀리 페르돈고개가 보인다. 해발 790m 짜리 "용서의 언덕"은 정상부근에 세워둔 철제 순례자상이 유명하다. 까미노 관련서적 또는 포스터에 반드시 등장하는 아이콘이다. 동네 아저씨들 가비얍게 오르는 뒷동산 같은 느낌이다. 풍력발전용 풍차가 즐비한데 스페인이 풍력발전비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동키호테 덕분일게다.



▼소문대로 짐만 택시로 보내고 홀가분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힘들면 이용해봐야지 생각했다. 아니지 그건 반칙이야. 반칙이라니? PGA에서도 캐디가 가방 메고 가쟎아.


▼폴란드 깃발을 단 바이크순례자 일행 중에서 이여인은 맨마지막에 걸어올라갔다. 다소 지친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는데 눈이 마주치니까 살짝 윙크를 한다. 그순간... 나도 모르게(정말로 반사적? 본능적?)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가슴이 상당히 많이 파인 옷을 입었다) "용서의 언덕" "회개의 고개"를 오르며 이런 행동을 했음을 정말 부끄럽게 생가하며 반성한다. 오르기전에 저질러서 다행이다. 그런데... 하얗고 풍만하였다.


▼어제 빨래한 양말(라이너)를 배낭에 걸고 걸었다. 해가 강해서 금방 마른다. 모자를 잃어버린 바람에 온종일 곤혹스러웠는데 손수건을 여자들처럼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벌써 포기하고 돌아선건가? 하기사 이왕 포기할거 일찌감치 하는게 낳을지 모른다. 잘못하다간...

▼이곳이 페르돈 언덕. 앉아서 쉴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사진의 왼쪽 모퉁이에 기념비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아니면 땡볕에 그냥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렉과 데이지를 다시 만났다. 댄은 버스를 이용 점프했다고 한다. 데이지는 원래 무릎이 아픈데 좀 힘들다고.


▼철제 동상들이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좋은 사진을 잡기가 어렵다. 이럴때 앵글 만드는 법. 


▼아직 발이 건재하다. 초반인데 당연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반부터 발병을 일으키고 그렇게 되면 까미노 걷는 내내 괴롭다. 출발전 발관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도다. 


▼Puente la Reina의 입구에 있는 이 알베르게도 평이 좋은 곳이다. 나란히 붙어 있는 Jakue Hotel이 같이 운영을 하는데 저녁 부페메뉴가 좀 저렴한 편이다. Hyatt Buffet 같은 걸 상상하면 안된다. 가격이 싼 부페에 대해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페르돈을 내려오면서 또 내리막에 시달린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까맣게 죽어간다. 내리막 내리막... 자전거라면 내리막은 휴식일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 까미노는 Fitness일 뿐 순례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페르돈에서 이곳까지는 좀 지루하다. 아직 초반 일주일의 워밍업이 끝나지 않아서 몸도 마음도 쉽지는 않다. 


▼뀌로(스펠을 모른다)를 처음 만난건 첫날 피레네를 오를때였다. 가족 친구들과 대규모로 온 그는 마침 쵸콜렛으로 요기를 하고 있었는데 혼자 가는 나에게 "쵸콜라다"를 외치며 권했다. 난 서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잘 보관해두라 그러도 지나쳤는데 여기서 만나자마자 내 쵸콜렛 달라고 했더니 마구 웃는다. 금방 친구가 된다. 그는 세빌리아 사람이다. 영어가 전혀 안된다. 어떻게 대화하냐고? 간단하다. 그는 계속 스페인어로 나는 영어로 얘기한다. 물론 중요한거는 이렇게 바디 랭귀지. 모자 잃은 탓에 단 하루만에 완벽하게 선탠.


▼까미노의 성당은 로마네스끄 또는 고딕 양식이거나 섞여있거나이다. 어딜 가나 템플기사단, 성요한 기사단이 등장한다. 아직 프랑스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샤를마뉴가 보어인과 전쟁 벌였던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까미노길 자체가 유럽의 문화유산이며 거대한 박물관이라는 걸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나는 중세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댄은 마을입구로 조금 더 들어가서 수도원에서 하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마을을 돌다 만났다. 동네 중학생 꼬마들이랑 어울려 잠시 이런저런 농담. 드라마 "사춘기"생각이 나서 장난을 쳤다. "이동네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럼 이 girl을 좋아하는 놈은 누구야?" 이렇게되면 아우성이 벌어진다.


▼나도 저렇게 상냥하고 예쁜 며느리 두명 예비되어 있다고 믿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데이지가 얼굴을 붉히면서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뭔가 몹시 곤혹스런 표정이다. 아침에 급하게 짐을 싸다가 그만 내모자를 자신의 배낭에 집어넣은채 모르고 왔다고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어쩔줄 모른다. 얼굴 반쪽은 이미 검뎅이가 되었는데 미안한들 어쩌겠는가. 모자가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이어폰이어버드, 지팡이, 모자. 모두 고마운 나의 까미노 동행들이다. 여기선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이틀 차타고 휴식하는 바람에 건강을 완전 회복했다는 댄은 지난번 내가 밥을 산 답례로 자신이 한잔 사겠다 한다. 예순일곱. 그는 이번 까미노에서 예순여덟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푸엔테(Puente)는 '다리'라는 말이다. 11세기에 마요르 도나 왕비가 순례자들을 위해 지어준 다리라고 한다. 그래서 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이름이 마을이름  되었다. 왕비의 다리 = Puente la Reina

다음날 새벽에 떠나느 바람에 어둠속에서 노출이 제대로 나올리 없다. 원본은 그냥 깜감이인데 Leica의 괴력으로 노출정보가 그런대로 남아있었는지 Aperture에서 엄청 노출을 뻥튀기해서 겨우 윤관을 잡았다. 이래서 RAW로 찍어야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