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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2 Roncesvales - Zubiri

Stage#2 Roncesvalles - Zubiri

Stage#2 Roncesvalles - Zubiri

22km


신기하게도 눈이 떠졌다. 자명종도 없이. 새벽 어둠속에서 사람들은 부산하게 출발준비를 한다. 아직 잠든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 배낭을 꾸리는게 알베르게 예의다. Morgan 가족들과 함께 출발하면서 Zubiri에 도착했을 때 묵을 알베르게를 정했다. 삭신이 쑤시지만 의외로 몸과 마음은 가볍다. 

▲지나가는 순례자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수도원 출구를 막 빠져나가는 시각 아침 7시.

▲새벽안개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늦여름, 새벽이 적당히 선선한 탓에 순례자들은 일찍 출발해서 일찍 도착하는 일정을 선호하게 되는데 대개 5~6시간 걷는다면 휴식시간 1~2 시간 포함하면 아침 7시 출발, 오후 2~3시 도착의 스케쥴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씻고 마을 둘러보고 다음 일정 준비할 여유가 된다. 걸음이 느리면 좀 더 일찍 출발하고 좀 더 늦게 도착하면 된다. 걷는 속도는 자신에게 맞추는게 좋다. 특히 초반에 무리하면 망한다. 


▲종종 길에서 배낭을 다시 정리하는 모습들을 본다. 어둠속에서 배낭을 꾸리다보면 제대로 정리 안되는 경우도 있을거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배낭에 침낭이나 판초, 신발 등을 주렁주렁 다는 것보다 모두 안에 집어 넣는게 좋다고 한다. 배낭은 자신의 몸에 맞아야 하고 무거운 것은 위, 가벼운게 아래로 가는 것이 정석이다. 문제는 어떻게 몸에 맞추냐 하는 것이다. 이건 아웃도어 가게에 가서 자신의 토루torso를 측정해봐야 안다. 미국의 REI나 한국의 오케이아웃도어 매장에 가면 측정해 준다. 알맞은 배낭은 신발과 더불어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아이템이다.


▲마을이 예쁘다. "Band of Brothers" 같은 2차대전 영화에서 네덜란드의 마을을 행군할 때 사용된 세트 같다. 


까미노를 따라 카페, 레스토랑, 바(Bar, 바르라고 발음) 등이 늘어서 있는데 아침을 제공하는 곳이 나온다. 알베르게에서 미리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고 오는 순례자들도 있고 거리에서 전날 준비한 샌드위치나 빵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이런 카페의 메뉴는 바게뜨, 커피이다. 커피는 우유 섞은 것과 안 섞은 거 두가지다. 에스프레소가 워낙 진한 편이라 대부분 우유 섞은 놈을 마신다. 주문할 때 "카페 콘 라체"(Cafe con leche, 밀크커피 또는 카페라떼, 커피와 우유를 1:1 비율로 섞어서 마신다)라고 말한다. 까미노 카페에 있는 커피들은 다 비슷한 기계에서 뽑아내는데 커피맛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므슈 뱅상과 플로렌스는 까미노 초반에 자주 만났다. CF 등에서 헤어드레서 일을 하는 뱅상은 이번 까미노가 두번째라고 한다. 지난번에 완주한 것 같지는 않다. 담배를 많이 핀다. 빠리지엔 플로렌스는 썡장역에 내릴 떄 처음 보았는데 깡마른 체구로 가볍게 걷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다. 까미노에선 대부분 순례자들의 뒷모습을 찍게 된다. 걸어오는 모습을 찍으려면 부지런히 앞으로 가서 준비해야 하는데 무지 귀찮고 힘든 일이다.

▲신혼부부 그렉과 데이지는 늘 같이 걷지는 않는다. 데이지는 시아버지즐 잘 챙겨주는 편이다. 그렉은 힘이 넘쳐 보였다. 

▲신부 복장을 하고 가길래 잠시 불러세워서 촬영을 했다. 

프랑스에서 온 Jean Claude. 영화배우 쟝끌로드 밴덤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농담을 했다.

어디서 신부 의상 구했는지 웃기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진짜 신부란다.

누군가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도 보았다고 한다. 아뿔사! 

▲Zubiri 초입이다.여기까지 내려오는 내리막이 힘들었다. 피레네 넘어올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듯 돌뿌리 투성이의 내리막길은 가뭄때문인지 먼지가 자욱했다. 이때부터 계속 내리막 공포증에 시달린다. 이 낡은 건물을 돌아가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 건너서 마을이다. Morgan 식구와 약속한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마을을 나왔는데 딱 시에스타에 걸렸다. 방금 마을 들어올 때 보았던 수퍼마켓이 문을 닫았다. 뿐만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모두 문 닫고 다들 집에 들어가 느닷없이 유령의 마을이 된다. 목은 타오르고. 할 수 없이 알베르게의 벤딩머신에서 콜라를 빼 마셨는데 꿀맛이다. 다니엘이 걱정되었다. 다니엘의 딸 제이미도 걱정인지 산을 거슬러 올라간다. 원더우먼! 빨래하고 마을 어귀로 다시 나왔다. 제이미가 헐레벌떡 내려온다. 다니엘은 한시간 거리에 내려오고 있는 중이고 혼자 올수 있다고 했단다. 내가 기다릴테니 들어가 쉬어라 했다. 콜라 한캔을 새로 가져왔다. 목마른 다니엘에게 도움이 될것이다. 기다리는 사이 한국인 일행이 내려온다. 알베르게가 모두 찼다는 얘기를 들려주니 실망하는 눈치. Zubiri엔 Municipal(공립) 알베르게의 수용인원이 많지 않고 사설 호스텔도 이미 만원이다. 오늘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숙소를 구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음 마을인 Larrasoana 까지는 5km를 더 가야하는데 꼭 마라톤에 골인하고 나서 추가로 더 뛰어야 하는 기분이라 이럴 경우 순례자들은 죽을 맛이다. 결국 한인 그룹들은 마을에서 제공해 준 학교 교실바닥에서 잘 수 있었다 한다. 어떻게든 순례자들이 잘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부는 공립알베르게 마당에서 노숙한 사람도 있었다.


한시간 넘게 기다리자 드디어 다니엘이 절룩거리며 내려온다. 

카메라를 꺼내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알베르게로 함께 걷는 동안 하룻동안의 무용담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몹시 힘든 듯 절룩이면서 자꾸 쉬어간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숙소에서 나와 N-135를 따라 북쪽으로 300m쯤 걸어가서 식당을 만났다. 그냥 시골 식당인데 먹을게 마땅치는 않다. 다니엘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내일 버스편을 이용해 다음 장소로 가도록 권했다. 다른 식구들도 모두 찬성인테 워낙 고집이 세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데이지가 걱정이다.

이날 알베르게 부족사태가 2012 가을학번 동기들의 레이스를 촉발했다. 숙소를 제대로 잡지 못해 고생했던 순례자들이 앞다투어 새벽에 출발하고, 평판이 좋은 알베르게는 예약을 통해 선점해 버리는 통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특히 걸음이 느린 사람들, 시니어들은 달리 방도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설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았지만 이 또한 스페인어가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침대가 있거나 말거나, 예정도 계획도 없이 발 닿는 대로 가는 유유자적 순례자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