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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Stage#29 Arzua - Santiago de Compostela

Stage#29 Arzua - Santiago de Compostela

Stage#29 Arzua - Santiago de Compostela

The Day @ Satiago


Arzua를 출발할 땐 Monte de Gozo가 목표였다.

Eroski의 루트제안에 따르면 Arzua에서 Pedrouzo까지 가서(19km) 숨을 고른 다음 이틀째 20km를 걸어 Santiago에 들어가는 것으로 추천되어 있었다. 하지만 Pedrouzo는 별 특징이 없는 장소이고 마지막날 20km 걷느니 교황방문 기념탑이 있고 Santiago 지척에다가 마지막 캠프를 두는게 어떨까 생각했다. 그게 힘들면 그보다 더 전에, 10km 쯤 남기고 한숨 죽였다 월요일 입성하리라 생각했었는데 19Km 전방 information의 호스피딸레로 Pedro가 자기는 Monte de Gozo 싫어한다며 Santiago가 바로 코앞인데 왜 멈추냐는거다. 그래서 주저없이 Hostal 예약을 부탁했다. 장고해서 계획을 세워봐야 이렇게 느닷없는 일들이 늘 생긴다.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사설 호스텔 Maria는 full이어서 그친구가 소개해주는 26유로짜리 pension에 예약을 잡고 전진.


▼갈리시아의 아침II


▼N-547도로를 따라 마을과 숲으로 들락거린다. 숲길을 버리고 도로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단거리겠지만 그건 반칙이다. 자전거나 할 짓이다. 숲속에선 뜻하지 않은 광경을 보기도 한다. 

Casa Domingo의 돌비사운드 주인공들을 다시 만났다. 코골이 시뇨라와 코풀이 시뇨라도 한방에서 동침한 인연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이들의 차림새로 보아 100km 이내로 걸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느쪽이 골이고 어느쪽이 풀이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양치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코골이 시스터즈에 따르면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갈리시아 풍경이라고 한다.


한시간쯤 같이 걷다가 Buen Camino! 인사하고 앞서 나갔다. 

아름답고 외로운 숲길로 들어선다. 수량이 풍부한 갈리시아는 10월이어도 녹음이 짙다.


▼숲속의 평화. 2004년 6월 24일, 두번의 연속 순례를 마치고 Santiago에서 편안히 잠들었다고 한다. 왜 그녀의 죽음을 여기 이 갈리시아의 숲길에서 추모해야 할까. 지친 순례자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O Podrouzo를 지나는 길, 공사중이라 파헤쳐진 입구를 위험하게 돌아 들어와 들른 이곳에서 처음으로 맛없는 Tortilla를 먹어 볼 수 있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이태리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그들을 Fisterra에서 다시 만나 꽤 괜찮은 저녁을 함께 했다. 어디건 나쁜 일만 일어나는건 아니다.


▼또르띠야에 실망, 배낭에 남은 재료를 이용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제부터 길도 사람도 삭막해지기 시작한다. 대도시가 가까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40km 강행군의 여파로 심신이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19km 전방에서 숙소 예약할 때와 지금은 상태가 다르다. 

하지만 Santiago가 바로 저긴데 어쩌겠는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순례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텅빈 길을 혼자 걷게 된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이 악물고 천천히 걷는다. 

San Marcos를 지날때 바람이 세차게 일고 새떼들이 일제히 지저귄다. 분명 천사들의 함성을 들었다. 

물론 환청이겠지만. 황홀한 기분이 들어서 가슴 펴고 개선장군처럼 걷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비행장. 많은 순례자들이 순례 마치고 여기서 뷰엘링이나 라이언 같은 저가항공으로 돌아간다. 활주로 끝부분의 좁고 낮은 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엔진소리만 들린다. 


▼갈리시아 방송국(TVG) 방송국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던가?

Monte do Gozo는 순례의 최종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한시간 거리, 약 5km 떨어져 있는 언덕이다. 

1993년 성야곱 성년을 기념하여 500침상의 방갈로 스타일 호스텔을 대대적으로 신축했는데 넓은 마당에선 콘서트가 벌이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근데 이게 거대한 포로수용소 같아서 좀 흉물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호스텔을 "현대의 비극"이니 하면서 비판적으로 묘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Brierley, John A Pilgrim's Guide to the Camino de Santiago) 

이곳 정상에서 보면 유칼립투스 나무숲 저편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세개의 첨탑이 보이고 전통적으로 순례를 마치게 된 순례자들은 그 황홀감에 목놓아 울었다고 했다. 근데 날씨 탓인지 멀리 산티아고의 흐릿한 풍경 속에서 성당의 첨탑은 보이지 않고 대신 누군가 나뭇가지에 널어놓은 빨간 여자팬티가 성스러운 마음을 어지럽힌다. 제길.


▼전교황 요한 바오르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거대한 기념비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지나치게 크고 흉물스럽다고.

그래도 그게 Monte do Gozo의 상징이니 뭔가 기록해 둘 필요는 있다. 언덕에 오르기전에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다. 거기서 콜라 한잔 마시고 점원에게 사진 부탁.




언덕을 내려오니 집단포로수용소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정말 한심하다. 

피크시즌에 산티아고에 있는 숙소가 수용한계를 넘어서면 이곳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하니 정말 수용소다.

다만 이곳은 일반알베르게와 달리 며칠이고 있어도 되는 까닭에 여기서 바로 피스테라나 묵시아로 향하는 사람들에겐 편리할 수도 있겠다. 어쨋건 머무르지 않은게 천만다행. 다시 한번 Gracias Pedro.


언덕을 내려오며 산티아고를 향한다. 가슴이 뛴다. 

물론 내리막은 싫지만 그리 길지 않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어색하게 건네고 시가지로 들어가면서 도시 사람들을 본다.

차갑고 무표정하며 갈길 바쁜 사람들. 간간이 순례자들이 눈인사를 해온다.

순례의 끝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연민을 교환하는 느낌.

아! 템플기사가 여기까지 마중나와 지켜주고 있다니. 


언덕을 올라서며 멀리 건물사이로 성당의 첨탑을 본다.

저 정도면 12분거리일게다. 

수많은 관광객들. 꼬마관광기차를 탄 사람들이 신기한 듯 아시아의 순례자를 보고 수근거린다. 

더러는 사진도 찍는다. 미소로 답한다. 

"예, 800킬로를 왔답니다. 걸어서"

내가 관광상품도 되는구나.


어떤 기분일까 '그곳'에 발길을 멈추게 되면.

자꾸 웃음이 나온다.

성당으로 내려가는 골목

수백년된 이 돌길을 따라 무수한 순례자들이 내려갔을 것이다.

성당 왼쪽 면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거리 음악가가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있다.

끝내 Montana Johny의 연주를 듣지 못하였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넓은 광장이 열린다.

대부분이 관광객이고 순례자들이 듬성듬성 서거나 앉아서 성당을 멀거니 올려다본다.

다들 감회어린 표정들이다.

예상은 했지만 환호는 없었다.


먼저 와 있었던 JK, YS을 만난다.

여러날 같이 걷고 헤어졌다가 만나다 반복하고 최후의 만찬만 수차례더니 산티아고에서 또 만나다니.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착하고 예쁜 녀석들.


로그로뇨에서 한번 만나고 헤어진 JS를 보고 Mr. 황도 만난다. HR은 베드버그한테 얼굴을 송두리채 헌납하여 벌집이다.

순례자사무실을 찾아 크레덴셜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받아쥔다.

루카는 이 증서를 받자마자 찢어버렸다고 한다. 증서 받으러 걸을게 아니라는 이유다. 

루카가 보고싶었다.

저녁때 만나기로 하고 골목의 펜션을 찾아 짐을 풀었다. 끔찍하게 비좁은 방이다.

차라리 알베르게에 가거나 아예 오늘부터 파라도르호텔을 가는게 나았을까?

어쨋건, 망설임없이 면도를 했다. 비포어 애프터 비교사진도 찍었다.

나 돌아가고 싶다.


'변신'하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러시안 거리밴드를 만난다. 발라라이까! 깔린까, 커츄사, 볼가강의 뱃노래, 모스크바의 밤 등등 부르는 대로 다 연주해주는게 고마워서 CD를 몇장사서 아이들과 나누었다.


코골이자매를 또 만난다. 오늘은 같은 방에서 잘일 없으니 걱정할거 없다. 서로 축복해 주고 헤어진다.

인사는 여전히 Buen Camino! 어차피 우리의 길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니.


해가 기운다. 


▼Plaza Do Obradoiro에서의 촬영팀 하나.

대부분의 핸드폰카메라나 똑딱이들은 24mm렌즈라 하여도 1.6x 크롭이라 화각이 대성당을 커버하지 못한다. 억지로 찍으려면 성당에서 한없이 멀어져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광장의 바닥공간과 사이의 엑스트라들이 불필요하게 화면을 채우게 된다. 대성당을 등지고 왼쪽 모퉁이로가면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이쪽에 내려서서 카메라를 로우로 잡으면 비교적 구도가 괜찮은 앵글을 만들 수 있다. 아래 사진은 프랑스 관광객 할아버지가 찍어준건데 찍는 사람이나 피사체가 전체적으로 우측(화면에 보기에)으로 이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래와 같은 시도도 괜찮다. 디즈니랜드에 온 것 같고 천진하지 않은가. 미안하다 JK


JK YS와 같이 저녁을 했다.

별생각없이 찾은 레스토랑에서 하필이면 마드리드 레알과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를 생중계 하는 스크린 바로 앞에서 식사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Pizza, 나는 연어와 맥주.

자리를 옮겨 Rua de Vila의 Cafe Casino에서 상그리아를 실컷 마시고 성당 광장 바닥에 누워 마지막 밤을 나누었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일이면 YS는 서울로 돌아가고 JK는 Fisterra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갈길을 가지고 있다. 잠시 함께 한 시간들을 감사한다.


▼Cafe Casino는 최상의 디저트를 제공하는 곳이다. 스페인 현지인들이 주 손님인데(특히 할머니들이 많았다) 물론 일반메뉴도 다양하다. YS에게 옆자리 디저트가 무언지 물어보고 오랬더니 시키는 대로 한다. 미안하다 YS. 



이 못생긴 18세기 증축건물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순례자사무실에서 주는 Certification(증서)을 받기 위함은 더욱 아니다.

Camino de Santiago, 그 순례의 역정(歷程)

정점을 지향하는 경주가 아니었다.

파올로 코엘료의 말처럼 "모든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

길에서 배우고 길에서 들으며 길을 노래하고 길과 하나 되어 겸손해 지는 체험을 통해

나의 순례는 길, Camino 위에서 완성되어 왔던 것이다.


기억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을